일어연습을 핑계로 TV앞에서 일본방송을 기회있을때마다 보곤했다. 그러던 중 김정은 김정일 키타죠센이 들린다. 모야? 시커먼 썬글라쓰를 쓰고 풍채좋게 생긴 사람이 사람 많은 거리를 걸어간다. 쯔키지 수산시장이란다. 노량진 어시장보다 더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어시장이다. 그 유명한 긴자거리가 도보로도 갈 수있고 토쿄 메트로폴리탄의 스시집은 다 이리로 와서 생선을 구해 가는듯싶다. 거기에 나타난 이 사람은 주방장이다. 그것도 평양에서 온 주방장, 후지모토 켄지(藤本健二)일본인이다. 그가 평양에서 왔기에 이렇게 방송에 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니 평양으로 돌아갔는데 연락이 현재 까지 두절되었다는 이야기다. 쯔키지에 나타난 이 영상은 수개월전에 찍은 것이란다.
이야기는 이렇다. 90년대 초반 김정일의 주방요리사중 한명으로 스타웃되서 10여년을 평양에서 주거하며 요리사일을 하다가 김정일 사후인지 다시 일본으로 귀국했는데 김정은의 부탁으로 주방총책임자로 또 다시 평양으로 간 경력의 요리사였다. 그러던 중 김정은의 부탁으로 평양에 일본식 라멘가게를 열기위해 라멘을 공부하러 재귀국, 방문한 라멘 가게가 쯔키지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영상은 그가 쯔키지로 가며 촬영팀과 인터뷰를 하였다. 역사가 깊고 단순하면서 풍미가 있는 가게로 간다고. 그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배울 수있다면 영광이겠다고 했다. 이노우에(井上)가 그 가게다.
둘째 녀석이 뉴욕에서 온 후 시간차때문에 새벽에 깨어난다는 것을 잘알았다. 이노우에는 새벽어시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새벽 4시에 개정 슾이 다 동이 날때까지 장사를 한다는데 오후 1시이전에 보통 끝난다한다. 와 Perfect! 아들아 라멘먹으러 가자!! 더우기 새벽이고 큰길 앞에 있는 가게라 그냥 차를 세우고 20분정도 식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그렇게 주차해서 주린 배를 달래었다. 겨울의 새벽은 토쿄라도 역시 싸늘하다. 그 싸늘함이 코속으로 들어올땐 마치 위스티 한모금 목구멍을 넘어 타고 흐를때처럼 싸한 기운이 가슴 속으로 퍼진다, 영혼을 깨우듯.
초행은 설레이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한다. 차로 운전해가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을 따라 간다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열심히 내가 보았던 그 방송의 내용을 아들에게 말해주며 나의 긴장한 모습을 감추려했다. 불꺼진 긴자를 지나 조금 더 가서 낮은 건물들 밑으로 불켜진 가게들과 부산스럽게 걸어다니는 사람들, 그사이로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자전거들이 보인다. 새벽을 끼우는 사람들이었다. 이노우에 앞은 역시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차를 세우고 나와보니 신기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없었다. 나무간판에 크게 써진 井上. "노"는 주로 4자로 되는 룰아닌 룰이 있어서인지 の를 붙여 이우에가 아닌 이노우에라고 발음한다.
잠시 옆으로 센다. 임진왜란을 일으텼던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 뒤를 이어 에도 시대를 연 토쿠가와 이에야스, 명치유신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 기블리 스튜디오의 창립자 미야자키 하야오, 모두 4자이다. 그래서 난 룰 아닌 룰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2자 3자의 성을 가진 일본 사람들도 사실 많다. 쫌 안다고 섣불리 단정해 버리면 이런 실수를 한다. 유명한 일본 만화중에 김전일 탐정이라는게 있는데 어떻게 김씨성을 쓰지?라고 생각할 수있으나 사실 그들발음대로 하면 킨다이치이고 네음절로 발음되는 한자세자가 성이다. 이런 웃긴 상황을 무슨 형용사로 표현할지 무슨 공모전이라도 하고 싶다. 로컬마켓팅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미노우에라멘으로 돌아온다. 몇분 지나지 않아 아들은 자기가 보고 영향받은 라멘다큐멘타리에서 주인 할아버지를 보았다고 한다. "그럴만 할꺼야. 그 김정은주방장이 와서 배우고 싶다했으니 소비자는 둘째치고 음식만드는 사람이 존경하는 음식이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결국 먹어본 맛을 못잊어 아들이 떠나는 날, 8시 비행기를 타기전 새벽에 한번 더 와서 후루룩 먹고 떠났다. 그게 아이들사이에서 전통아닌 전통이 되어 일본에 있는 부모곁을 떠나는 날은 라멘을 먹어야한다나. 첫째는 멘야이토에서 막내는 쯔케멘 이야모토에서 다 다른 곳에서 토쿄의 마지막 식사를 라멘으로 장식했다.
이노우에의 라멘은 내가 소개하는 인상깊은 라멘집의 라멘 그어느것보다 간단하다. 단순하고 희멀겋고 발그스름한 챠슈 동동 떠도는 잘게 썬 파, 그리고 멘마. 그게 다인데 그게 다가 아니다. 나는 이노우에 라멘을 Breakfast Ramen이라고 부른다. 기름이 과하지 않고 간장의 짭쪼름한 맛이 부드럽게 다가오고 추운 겨울 새벽 몸을 녹여주던 국물과 쫄깃한 면발, 상상할 수 없었던 아침 식사이다.
다시 초행길로 돌아가서 그때 살짝 놀랬던 것은 가게로 들어가는 문이 없고 부엌만이 환희 불이 켜진채 어깨가 굽어진 노인 한분만 좁은 공간에서 열심히 면을 삶고 파를 얹고 챠슈를 올리며 부단희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녀 한명씩 인도에서 주문을 받고 양쪽 끝에 세워진 높은 탁자위의 빈그릇들을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룻까지 씻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750엔씩 내고 참 라멘은 한 종류 고를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주문받는 여성분은 그저 750엔 만을 말할뿐이다. 그리고 테이블을 가리티며 기다리라한다. 당시는 왜 그랬는지 모든게 예민했다. 잘하지 못하는 일어탓에 금방 외국인줄 알아보고 우습게 대하지는 않을까 촉가을 세워 그들이 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세세히 지텨봤다. 나보다 나중에 온사람들이 먼저 대접을 받지는 않는지 그런 한편에 어떠한 맛의 라멘이 나올지 소록소록 솟는 기대감은 아무래도 味의 감각을 더욱 촉진시티는 듯하다. 아마 목구녕을 시리게 넘어가던 찬 바람도 마치 허기처럼 식욕을 돋구었는 지도 모르겠다. 구수한 냄새가 겨울 거리를 가득메운채 후루룩후루룩 길거리에 서서 먹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만 보이면서도 나도 그중 한사람이였다.
걱정한데로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에게 라멘 그릇을 먼저주었다. 나보다 일찍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늦게 받았다. 이유는 차별도 무관심도 아닌 가까운 쪽 테이블에 서 있는 손님들에게 먼저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다섯명의 손님앞에 노여질 다섯 그릇의 라멘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별의미가 없었다.
내앞에 놓여진 것이 무엇인가? 수십년의 노하우가 축적된, 맛의 절정이었다.
김정은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그요리사의 임무를 충족시티고도 남지 않을까? 오직 한가지 쇼유라멘은 짙은 갈색국물속에 섬섬옥수 늘어지 면과 송송 동그랗게 썰린 신선한 파들이 뱃놀이를 하고 연분홍빛을 띈 챠슈는 은밀한 속살같은 야릇한 감정을 불러 일으텼다. "짝" 나무 젓가락을 두쪽낸 손은 부지런하지만 이광경을 보는 눈은 꿈쩍이지도 않은채 이 맛갈스런 광경을 뚫어져라 보았다. 찰랑찰랑, 영화 탐포포의 라멘도사처럼 여기저기를 젓가락으로 느껴본다. 그러다 일순간 텀벙바다에 빠지듯, 면을 집어올려 입속으로 넣을땐 깊은 맛의 바다에 빠지는 느낌이였다. 구수하고 짭쪼름한 간장의 맛이 비밀스럽게 수십시간 끓인듯한 국물과 잘 조화되어 빈속을 달래주었다. 뱃놀이 하던 파들은 싱그러운 풀잎향처럼 풋풋함으로 짜고 기름진 맛이 과하게 넘치지 말라고 잘 보듬어주었다. 이런 극강의 맛의 조화를 느끼며 얼른 다시 한 젓가락 집어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은아 미안, 내가 먼저 맛본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들은 웃음없는 미소로 마냥 즐기고 있다. 그저 행복한 순간이이어졌다. 돈을 더 받아서라도 흔한 오오모리(곱배기)주문도 받을만한데, 공평하고자 하는지 단순화를 노린건지 모르겠지만 곱배기를 찾는 나의 마음은 아들도 동감하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랜채 입안에 남은 진한 국물의 여운을 느끼며 침을 꼴깍. 우리는 그자리를 그렇게 떠났다. [부드러운 챠슈는 앏게 썰려있어서만은 아닌듯 어떻게 조리가 되어있는지 그 발그스런 모습으로 듬직한 단백질을 건네 주는지 한두세 덩어리 덩 있어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노우에의 맛은 아들이 떠나는 새벽에도 우리를 불러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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